뉴스투게더 안상호 기자 | '개 식용 종식법'이 통과된 이후, 많은 농민과 귀농인들이 흑염소 산업을 새로운 희망으로 보았다. 국내 농가들은 흑염소가 보양식 시장의 대안으로 자리 잡을 것이라 믿으며 사육 규모를 확대했으나, 불과 1~2년 만에 그 기대는 절망으로 바뀌고 있다.
문금주 의원(전남 고흥·보성·장흥·강진)이 농림축산식품부로부터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최근 5년간 국내 흑염소 사육두수는 증가세를 보이고 있으나, 생산량은 5천 톤 내외에서 정체된 반면 수입량은 급증했다.
염소 수입량은 2022년 3,322톤에서 2024년 8,143톤으로 두 배 이상 폭증했다. 2023년에는 국내 생산량(4,991톤)보다 수입량(5,995톤)이 더 많아지는 기형적 상황이 벌어졌으며, 2025년 8월까지 이미 6,790톤이 수입된 것으로 나타났다. 결국 빈자리를 ‘국산’이 아닌 ‘수입산’이 채운 셈이다.
국내 재래종 흑염소는 성장 속도가 느려 1년 이상 키워야 50kg 전후에 불과하지만, 수입 보어종은 12개월 만에 60~100kg 이상 자란다. 이로 인해 가격 경쟁력에서 국산은 상대가 되지 않는다.
실제 경매가격 기준으로, 2023년 평균 66만 원이던 흑염소 마리당 가격은 2025년 상반기 52만 원 수준으로 급락했다. 일부 농가에서는 kg당 7,000~8,000원에 판매하는 상황까지 내몰리며, “키울수록 손해”라는 자조가 나오고 있다.
국산과 수입산이 뒤섞여 유통되면서 원산지 표시 위반 사례도 해마다 증가하고 있다. 2020년 13건에 불과했던 적발 건수는 2025년 7월 기준 29건으로 두 배 이상 늘어난 것으로 나타났다.
현행법상 국산 1%만 섞여도 ‘국산·외국산 혼합’ 표기가 가능해, 이로 인해 시장 혼란이 심화되고 소비자 신뢰는 급격히 떨어질 우려가 있다.
전남 강진·장흥 지역은 축산농가가 밀집한 곳으로, 흑염소 사육 농가의 분뇨 처리 문제도 심각하다. 인근 장흥의 퇴비·분뇨 처리시설이 외부 반입을 제한하면서 농가들은 분뇨를 제때 처리하지 못하고 있다.
결국 분뇨는 쌓이고, 축사는 규제에 묶이며 농가의 부담만 가중되는 이중고가 이어지고 있다.
문 의원은 “국내 흑염소 산업의 구조적 붕괴는 정부의 무관심과 방치에서 비롯된 것”이라며, 다음과 같은 종합적인 개선책을 제시했다.
먼저, 소·돼지·닭·오리처럼 흑염소에도 이력제를 도입해 생산부터 유통까지 전 과정을 추적 관리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를 통해 원산지 혼란을 해소하고, 소비자 신뢰를 회복할 수 있다는 것이다.
또한, 수입량이 국내 생산량을 넘어서는 비정상적 시장 구조를 바로잡기 위해 ‘수입 쿼터제’ 도입을 검토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와 함께 국산 흑염소의 소비촉진과 판로 확보, 유통망 개선을 위한 지원책도 병행돼야 한다고 덧붙였다.
아울러, 국내 환경에 적합한 고성장형·고체중형 품종 개발을 위한 정부 차원의 연구와 예산 지원이 시급하다고 강조했다. 재래종의 질병 저항성과 보어종의 성장 특성을 결합한 ‘국산 개량형 흑염소’를 개발하고, 농가 참여형 품종개량 프로그램을 도입해 현장 중심의 개량 효과가 확산되도록 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마지막으로, 현재 도축증명서에 염소가 ‘산양’으로 일괄 표기되는 문제를 개선해 품종과 사육 목적을 구분 표기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한우처럼 품종 정보를 명시함으로써 이력 관리, 통계 구축, 브랜드화 기반을 마련해야 한다는 것이다.
문금주 의원은 “정부가 개 식용 종식 이후 흑염소 산업을 대체 보양식으로 육성하겠다고 했지만, 실질적 지원은 전무하다”며 “흑염소 산업을 단순한 틈새 축종이 아닌 지역경제와 농가 생계를 지탱하는 전략산업으로 인식하고, 근본적인 보호대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강조했다.